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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20:24-29

제목: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세상이 어둡고 힘들어 질수록 사람들의 본능은 더욱더 현실주의에 사로잡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있어 이러한 사고는 자유의 역사가 아니며 그 열매 또한 현실에 멈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습을 보십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았다고 확신 있게 말하며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제자들의 말을 전혀 믿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불신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표현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심과 불신의 태도는 그를 장차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시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있어 복병입니다. 나아가 공생에 사역을 마치시고 바톤을 사도들에게 넘기시려는 예수님 앞에 온전한 열매를 드리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2023년 오늘 저희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며 하나님 앞에 우리의 열매를 보여 드리려합니다. 그 열매는 자유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의 열매를 가지고 오셨습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도마의 현재모습을 돌아보고 잠시 후에 오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의 열매를 가지고 있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는 초대교회기둥으로서 온 세상을 구원할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3년간 예수님을 따르며 보고 경험했던 그리고 변화되었던 자유의 열매가 없다면 이는 큰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도마가 각자 여러분 자신이라고 생각해보시기바랍니다.

그동안 3년간 예수님을 따르며 보았던 열매는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모습 또한 이러한 열매가 아니길 소망합니다.

이 시간 도마의 모습을 통해 그가 주님 앞에 다시 서서 보여드리는 자유의 열매를 생각하며 우리의 추수가 진정 주님이 원하시는 기쁨의 추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 도마의 모습,

 

본문25절에 다른 제자들이 우리가 예수님을 보았다. 즉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도마에게 전합니다. 그때 도마는 요20:25절에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도마의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나 감격 혹은 사모하는 마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절망적인 모습과 낙심에 가득 찬, 미래가 불투명한 우울한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런 모습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사명을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불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2023년 우리의 여정이 자유를 찾았다면 분명 우리에게서 이런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마의 모습은 사실 예견된 모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전에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과는 다른 정확한 고백보다는 급하고 직관적인 그리고 단순한 인간적인 열정의 모습을 가진 제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①의협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요11:16절에 보면 유대인의 핍박으로 다시 유대로 가기 어려워졌을 때 예수님이 나사로의 죽음을 아시고 깨우러 가자하십니다. 그때 다른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예수님이 유대로 가시는 것을 반대했지만 도마는 “주와 함께 죽으러가자” 하면서 염려하는 제자들을 독려하여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러한 도마는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선 생명도 아끼지 않겠다는 의협심이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정확히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육신적인 의협심과 열정이 가득한 단편적인 신앙의 자세였던 것입니다.

 

②무지한 도마였습니다. (요14:1-6)

요14:1-6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앞으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 말씀하실 때 도마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하면서 주의 사명과 사역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모습을 고백합니다. 즉 주의 십자가를 앞에 둔 시점에도 그 길을 아직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제자의 모습을 고백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모습이 혹여 있습니까?

 

③의심과 불신을 품은 도마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십시오. 본문에서 도마의 모습은 저가 예수님을 따라 다녔으나 눈에 보이는 육신적이고 현실적인 세계관을 소유한 자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전하는 제자들 앞에 내가 손으로 넣어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눈에 보이고 만져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러한 도마의 모습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도마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다시 도마에게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그는 더 이상 제자의 사명을 회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유의 빛을 알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주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기억 속에 위대한 도마라고 기억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2.  도마를 찾아오신 예수님.

 

이러한 도마에게 26절에 보면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을 때” 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도마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27절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리고 29절에서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도마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후에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순교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지금도 자신과 함께 하심을 확신하는 자유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요. 그는 보지 않고 믿는 신앙을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열매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져 온다면 그것은,

 

3. 추수의 열매.

 

①보지 않고 믿는 자가 되는 자유의 열매를 가져오십시오.

즉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진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일꾼은 눈에 보지 않아도 믿음으로 믿고 따르는 마음자세와 행동의 모습이 중요한 열매입니다.

 

벧전1:8에서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라고 수신자인 소아시아 교회에 편지합니다.

 

그러므로 보지 않고 믿는 자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그의 주권을 믿는 자요. 진정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맡기는 자유의 열매를 가진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열매를 하나님 앞에 가져 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의 열매를 받으시고 그 기쁨을 역사하실 것입니다.

 

②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가진 것입니다.(마15:21-28, 막7:24-29)

도마의 또 다른 모습을 성경에서는 잘 알지 못하나 전승이나 도마의 행전을 살펴보면 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를 짐작케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2가지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자 하는데 그 첫째는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가진 것입니다.

그는 인도 어느 지역의 왕국에서 선교하다가 오해를 받아 순교하게 되었을 때 그는 복음을 포기하지 않고 그 순교를 묵묵히 받아드리되 그들에게 하늘의 왕국을 선포했다고 전합니다. 즉 이러한 그의 확신에 찬 소망의 모습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죽음에 이르러도 포기 할 수 없는 참된 구원의 자유를 경험한 열매를 그가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케 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행전20:24) 그러므로 이러한 모습이 오늘 추수감사절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져와야 될 열매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포기할 수 없는 확신에 찬 열매를 하나님 앞에 보여 드리길 소망합니다.

 

③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요11장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나사로의 죽음 소식을 듣고 유대로 가기를 꺼려하는 제자들 앞에서 요11:16에 다음과 같이 도마의 고백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가 당시에 고백한 이러한 고백은 의심 할 것 없는 진심의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모습을 보면 그러한 도마의 모습은 보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전승에 따르면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위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가졌다고 합니다.

 

즉 바울사도가 빌3:12-14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고백한 것처럼 그도 푯대 되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인도까지 복음을 전하러 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고백한 도마의 확신은 당시는 연약했으나 그가 예수님을 다시 만난 이후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인생의 시간을 지나가면서 지나간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단의 열매를 주 앞에 오늘 가져 왔다면 하나님은 추수의 열매를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영주교회는 이러한 도마의 모습을 교훈삼아 주 앞에 인정받는 추수의 열매를 들이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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