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 문:계1:9-16

제 목: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를 바로본 사도요한)

 

2020년 대한민국에서 교회라는 존재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객관적인 답은 교회의 본질을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교회를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현실 앞에 교회의 의미를 알 수 없게 하는 위기의 시대라고 진단합니다. 또한 교회 스스로 올바른 교회의 인식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위기 앞에 사탄의 역사가 숨어 있음을 저는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사탄은 이러한 시대의 위기를 이용해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잘못 해석하거나 깨닫지 못하게 하는데 열을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도 교회를 손가락질하고 조롱하며 성도 자신들도 방황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에 저는 이 시간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다시 깨우치고자 합니다. 그래서 위기를 기회로 다시 교회의 바른 모습을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1. 교회의 정의.

 

저는 먼저 말씀을 증거 하기 전 교회의 정의부터 바로 세우고 말씀을 증거 하려 합니다. 교회라는 단어는 헬라어 “에클레시아”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어떤 장소에서 밖으로 나갔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초대교회에 일반인들이 기독교인들을 향해 표현한 단어라고 합니다. 즉 교회는 자신들과 같은 세상적인 삶의 모습에서 다른 구별된 모습 또는 경건하거나 모범이 될 만한 모습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부쳐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반적인 정의라고 한다면 예수를 믿는 구별된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기독교적인 의미에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이라고 정의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정의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 고전1:2절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①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②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③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한 자들의 공동체이며, 거룩한 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자들이요, 나아가 각처에서 우리의 주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여 살아가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밧모 섬에 유배된 사도요한.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하나로써 야고보의 형제이며 베드로와 더불어 초대교회 기둥같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는 다르게 가장 오래 살았으며 밧모 섬에서 자연사했습니다. 그리고 유배된 밧모 섬에서 장차 미래에 나타날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듣고 보았으며 그 계시를 오늘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계시록을 통해 보여준 여러 가지 미래의 모습 중 가장 중요한 핵심은 교회의 얼굴입니다. 교회의 순전함이나 타락하는 모습 그리고 그러한 교회를 대적하고 핍박하는 사탄의 역사를 예언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요한은 교회의 본질을 스스로 증명하고 우리가 교회의 본질을 어떻게 지켜 나갈 것인지 그 방향을 보여줍니다.

 

3. 사도요한이 교회를 발견하게 된 배경.

 

사도요한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계시 중에 발견합니다.

그가 교회의 본질을 발견하게 된 배경은

 

①환난 중에 밧모 섬에 유배됨으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시73:14-17)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된 것은 예수님의 복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요한에게 은혜로 참 교회의 본질을 보여 주신 것인데 이처럼 주를 위해 진리를 지키고 고난 받는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에게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예: 엘리야가 고난 중에 호렙산 반석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발견(왕상19장)

 

②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으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도요한이 교회를 바로 볼 수 있는 지혜와 은혜는 주의 날에 발견했으며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습니다. 즉 주의 날과 성령의 감동은 예수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증명하는 날이요 참된 안식을 완성하신 날입니다. 성령은 이날에 사도요한에게 교회의 본질을 바로 깨닫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도 주의 날에 참여할 때 성령께서 교회의 바른 모습을 보는 눈을 허락 하실 것입니다.

 

4. 사도요한에게 보여주신 교회의 참 모습.

 

사도요한이 계시가운데 교회의 모습을 발견했는데 그가 본 교회의 모습은 금 촛대였습니다.(계1;12,20) 금 촛대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즉 금은

 

①섞이지 않는 순수한 교회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순금은 불순물이 다 빠져나가고 오직 금만 남은 것이 순금입니다. 이 금은 섞인 것이 없는 순전체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예수님의 피로써만 존재하기에 다른 이방종교나 그와 흡사한 것들은 우리가 인식하는 교회라고 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②연단 받은 교회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금은 불순물이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불 가운데 많은 연단을 받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연단 받은 존재입니다. 즉 세상과 연합하지 않거나 섞이지 않음으로 핍박과 멸시도 당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단의 과정은 교회가 세상에서 온전히 벗어난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사는 교회의 모습은 세상과 부딪치고 핍박받으며 고난 가운데서도 타협하지 않고 순수성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예: 에크레시아 라는 단어를 다시 상기합시다.

 

③변치 않는 교회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금은 수천년이 지나도 여전히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 금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교회는 많은 시간이 지나도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본질이 바뀌지 않으며 언제나 교회하면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게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공동체라고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현실을 보십시오. 교회 스스로 교회의 본질을 상실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믿음의 조상들이 걸어간 발자취를 따라 변치 않는 모습으로 다시 서야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교회의 본질이요 주님이 계시하시는 금 촛대입니다. 이러한 금 촛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5. 교회를 바로 볼 수 있는 방법. (9-16)

 

사도요한이 본 모습과 같이 교회를 금 촛대로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정리해 보겠습니다.

 

①밧모 섬을 경험해야합니다.

밧모섬은 요한이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할 때에 찾아온 고난의 장소인데 그곳은 주를 위해 믿음을 지킬 때 경험할 수 있는 장소이며 진리를 양보하지 않고 세워나갈 때 경험하는 장소입니다. 나아가 그곳에 오면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만 의지 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처럼 밧모 섬을 경험할 때에 교회를 바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고후1:8-9,12:9-10)

 

②주일을 바로 깨닫고 성령의 감동을 경험해야합니다.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으로 나팔 소리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증거 합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통해 교회를 바로 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주의 날에 나팔 소리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위해서는 주의 안식이 무엇인지를 바로 깨닫고 그 안에서 주일을 지켜야합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 주어진 참된 안식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여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하신 구속의 은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며 이러한 성도가 참된 교회의 본질을 보게 될 것입니다.

 

③예수님을 바로 발견해야합니다. (13-16)

예수님은 13-16절까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당신의 존재를 증거 하셨습니다. 즉 이러한 예수님의 존재를 통해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바로 깨달으려면 예수님의 모습을 찾아야합니다. 그러면 참 교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러한 성도는 말세에 자신의 본질인 교회를 세워나가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교회가 시대적인 위기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러한 위기 가운데서도 교회를 바로 깨닫고 보는 눈을 가지고서 시대를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1 2023.9.24 행3:1-10 제 목: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청지기 2023.09.28 7
150 2023.9.17 눅13:1-9 제 목: 재난의 징조를 분별하라. 청지기 2023.09.23 2
149 2023.9.10 빌2:1-11 제목: 하나 된 마음으로 살자. 청지기 2023.09.16 2
148 20203.9.3 갈1:6-12 제 목: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청지기 2023.09.09 5
147 2023.8.27 욥8:5-7 제 목: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라. 청지기 2023.09.02 2
146 2023.8.13 잠16:9, 33 제 목: 부르심의 길을 바로 깨달았는가? 청지기 2023.08.13 2
145 2023.8.6 고전9:16-23 제 목: 주님 앞에 사명 감당하는 성도가 되자. 청지기 2023.08.12 2
144 2023.7.30 눅5:1-11 제 목: 얼마나 결단하여 순종했는가? 청지기 2023.08.05 2
143 2023.7.23 눅17:11-19 제 목: 예수님께 감사한 한 사람이 되자. 청지기 2023.07.29 3
142 2023.7.16 아5:1-6 제목: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가득하였다. 청지기 2023.07.22 4
141 2023.7.9 창32:24-28 진실로 맡기는 삶을 살았는가? 청지기 2023.07.15 2
140 2023.7.2 렘35:13-19 “하나님 앞에 영영히 설 사람은 누구인가? 청지기 2023.07.08 5
139 2023. 6.25 마11:15-17 제목: 춤추며 가슴을 치라. 청지기 2023.07.01 3
138 2023.6.11 고전13:1-7 제 목: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청지기 2023.06.14 3
137 2023.6.4 슥8:18-23 제 목: 희망의 모델이 될 것이다. 청지기 2023.06.10 2
136 2023.5.28 수23:1-11 제 목: 여호수아의 마지막 당부. 청지기 2023.06.03 5
135 2023.5.21 왕하18:1-8 제 목: 성군된 히스기야왕의 비밀. 청지기 2023.05.27 4
134 2023.5.14 딤후2:1-7 제목: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양육하라. 청지기 2023.05.20 1
133 203.5.7 엡6:1-4 제목: 자기의 위치를 꼭 지키라. 청지기 2023.05.12 4
132 2023.4.30 요5:1-10 제 목: 거짓된 자리에서 떠나라. 청지기 2023.05.0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