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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1:15-17

제목: 춤추며 가슴을 치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곧 올해 들어 첫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장마가 시작되면 하늘이 어두운 구름으로 항상 흐려질 것입니다. 또한 바람도 동반될 것입니다. 이러한 장마의 징조를 우리는 해마다 경험합니다. 이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시대의 징조들을 보면서 얼마나 그 징조를 판단하여 대비하고 있는지 각자자신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때로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성도가 다가올 위기에 깨어 준비하는 성도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 이시간 말씀을 통해 그러한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1. 예수님의 비유 속에 담겨진 마음.

 

예수님이 12제자를 선택하시고 사역하시는 가운데 시험에 든 세례요한과 더불어 당신을 깨닫지 못하는 그 시대의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시며 제자들에게 본문의 말씀으로 교훈하십니다.

본문의 말씀을 한마디로 해석한다면 인생의 시간에서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역사를 만났음에도 전혀 무관심한 감각이 없는 세대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러한 감각이 없는 세대가 어찌 된 일일까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알고 고친다면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분별하지 못하고 여전히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그 사람은 전혀 가망이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춤추며 가슴을 치는 사람이 되라고 제자들에게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비유로 깨우치고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속에 담겨진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감각한 시대에서 은혜를 지키는 비밀이 될 것입니다.

 

2. 비유 속에 담겨진 무관심에 빠진 그 세대 사람들.

 

예수님이 12제자를 데리고 여러 동네에서 전도하시며 가르치실 때 당신을 영접하지 않고 도무지 무관심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그 모습을 안타까워하시며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저들이 분명 예수님이 자기들이 사는 마을에 오셔서 말씀 전하시는데 왜 예수님이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물론 이 말씀의 숨겨진 진리를 해석하자면, 아이들의 피리와 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뻐하는 축제의 소리요, 아이들의 애곡하는 소리는 장차 있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전혀 알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무관심한 모습에 예수님은 참으로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첫째 문제는 구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문제를 유일하게 해결하시는 메시야 되신 예수님에 대하여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중요한 첫째 문제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마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 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 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두 번째로 예수님이 만유의 주인으로서 자기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심을 깨닫거나 믿지 않고 알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가는 길을 형통케 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무관심하고 자주 놓칩니다. 오히려 당장 눈에 보이는 먹을 것과 입을 것, 마실 것, 즐기는 것에 온 마음이 빼앗겨 구원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는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러한 자리에 혹여 있지 않는지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6장21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그리고 마6장25-26과 마6장30-33절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리고 영왕기하18장5-7절 말씀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왕하18: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18: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18:7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판단하고 선택해야합니다. 만약 예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하나님의 역사와 나라에 대하여 무관심한 사람은 예수님이 오셔도 깨닫지 못하고 춤추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성도가 되지 맙시다.

 

3. 무관심한 이유.

 

그럼 왜 무관심해 졌을까요?

 

첫째, 육체와 세상이 전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육신적인 사고와 세상적인 정욕적인 사고가 자신의 전부가 되기 때문입니다.(창6:2) 이러한 사람은 예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무감각 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는 돈과 현실적인 삶이 우선시되기에 그는 예수님과 구원역사에 무관심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롬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두 번째,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불택자이든지 아니면 성령을 소멸하는 자입니다. 롬8:9절과 갈5:16-17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생각해보시기바랍니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오늘 이 시대는 구원의 주체되시는 예수님은 점점 멀리하는 시대며그 결과는 성령의 감동이 사라져가는 시대의 모습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성도들은 성령을 거스리는 육신의 생각과 사고에 사로잡혀 구원에 대하여, 은혜에 대하여 무감각해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부 드립니다. 이러한 흑암에서 벗어나십시오. 그 길은 결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오직 자기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기뻐 춤추며 애곡해야 합니다.

 

셋째, 미래에 무관심한 결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차원적인 삶에 멈추어 있습니다. 그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과 현재에만 마음을 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미래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일 여러분이 어떤 일을 만나게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그 미래는 보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이 땅에서만 아니라 영원한 미래에 있으며 요3서2절 말씀처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는 말씀처럼 이 땅에서도 형통한 미래를 살다가기를 원하신다면 그는 예수님과 그 구원운동에 대하여 무관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지난2주 몽골 사역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섭리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몽골 선교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 확신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됩니다. 왜 나처럼 깨닫지 못할까? 눈에 보이는 데도 느끼지 못하는 현지 사역자의 모습에 다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깨달으시길 부탁드립니다. 피리를 불면 춤추고 애곡하면 가슴을 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새로운 미래를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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