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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눅17:11-19

제 목: 예수님께 감사한 한 사람이 되자.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가?)

 

세상에는 도움을 받으면 그 도움을 잊지 않고 꼭 보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지난 오송 지하차도의 위기 속에서 도움을 받았던 분들 가운데 20대 딸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구해준 트럭운전기사를 찾아가 진심으로 눈물로 감사하는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감사의 모습을 보고 저는 2023년의 중반을 지나가는 시점에 나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는 가운데 과연 나는 예수님께 나온 한사람이 되었을까 고민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18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오늘 이 음성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크게 들리길 원합니다. 그래서 시대의 어둠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사할 줄 아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1. 열 명의 문둥병자.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시는 중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중간에 있는 한촌에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만났습니다. 당시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사람이라고 정죄되어 그들은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벗어나 성 바깥의 정해진 곳에 외로이 모여 살았으며 가족들이 매일 가져다주는 양식으로 연명했습니다. 이러한 문둥병자들에게 있어 문둥병은 절망의 병으로서 저주받은 병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병은

 

①고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문둥병은 치료약이 없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병에 걸리면 그들은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병에 걸린 사람들은 당시 그들이 죽기까지 격리되어 가족과도 영영 이별하게 되는 상황에 맞닥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병은 당시 저주 받은 병으로서 그것은 죽음의 병이었던 것입니다.

 

②삶을 포기해야만 하는 절망의 시간들만이 예비 된 병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은 생업을 할 수 없었으며 그들의 오로지 성 바깥에 격리되어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치료약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병이 점점 진행되어 살이 썩어지고 문 들어지며 떨어지는 고통을 기다리는 삶이 그들에게 예비된 시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이병으로 인해 그들에게 주어진 미래의 사간은 절망이 그들에게 남겨진 시간들이었던 것입니다.

 

③동족에게 저주받은 사람으로 낙인찍혀 잊혀져가는 삶이 그들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문둥병은 죄의 삯이라 치부되어 동족들의 멸시와 조롱 가운데 저주받은 자라 치부되어 격리되었으므로 그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며 그들의 시간은 슬픔과 고통 속에 어둠의 사간을 바라보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희망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소문을 통해 어떤 질병도 다 고치시는 예수님이 계신다는 말과 더불어 그 예수님이 마침 그곳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문둥병자 10명은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촌에서 멀리 예수님을 바라보며 지나가시는 예수님께 우리를 긍휼히 여겨달라고 부르짖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열 명의 문둥병자가 고침 받게 된 방법.

 

10명의 문둥병자는 자신들의 부르짖음에 즉시로 응답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을 듣게 됩니다. 오늘 본문14절에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라는 말씀이 증거 됩니다. 이 말씀 속에서 10명의 문둥병자가 고침 받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 그것은 저들이

 

①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들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을 만나면 자신들이 나을 줄 믿었으며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거주하는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지만 멀리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힘을 다해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또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라 할 때에 아직 낫지 않았지만 그들은 한 결 같이 나은 것으로 믿고 제사장에게 담대히 나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저들이 병을 고침 받게 된 비결인 것입니다.

 

마9:20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9: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마15:28 “가나안 여자하나가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막10:46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②예수님께 간청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한 결 같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도 주님은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아픔을 싸매시며 고쳐주실 것입니다.

 

마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③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아직 문둥병이 고침 받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즉시로 그 말씀을 순종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 할 때에 병 고침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눅5장에 베드로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지 못했어도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을 때 고기를 넘치도록 잡은 것처럼 순종은 문둥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하지 않는 9명과 돌아온 사마리아인 한명.

 

누가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가진 믿는 자들과 그리고 동족유대인들에게 깨닫고 돌아오라고 호소합니다. 그래서 누가는 본문의 사건을 증거 함에 있어 유독 사마리아인 1명을 증거하며 나머지 9명의 고침 받은 문둥병자가 누구인지를 상기시키도록 합니다.

 

그들은 누구일까요?

 

물론 당시 불신앙으로 가득 찬 유대인들을 상징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9명을 찾는 다면 그는 고침은(구원) 받았으나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먼저 믿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혹여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포함 될 수도 있습니다.

고침 받은 9명은 고침 받은 이후에 감사는 잊은 채 자신의 기쁨만을 채우기 위해 먼저 가족이나 친구 또는 자신의 일터를 찾아 먼저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자신을 고쳐주신 예수님을 잊었을 것입니다.

오늘 세상 속하여 살고 있는 우리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돌아보십시다. 우리는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을 받았으나 정작 하나님은 잊지 않았나요? 그러나 한명의 고침 받은 문둥병자는 고침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즉시로 예수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그가 돌아 온 것은 자신이 받은 은혜의 가치를 깊이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는 이방인인 자신을 차별하지 않고 유대인 9명과 동일하게 불쌍히 여겨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고침 받을 수 없는 자신을 긍휼히 여겨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가 예수님께 돌아왔을 때 19절에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즉 사마리아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영혼구원과 더불어 그의 미래가 천국의 시민 되었음을 확신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고침 받은 열 명의 문둥병자가운데 포함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9명의 문둥병자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한명의 문둥병자의 길을 갈 것인지 우리는 결단해야 될 것입니다. 그 9명의 문둥병자는 이후에 다시 그 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에게 있어 더 중요한 구원의 보증수표가 없다는 사실은 그들이 고침 받은 기회에 더 큰 은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더 큰 은혜에 참여합시다. 고침 받은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은혜에 감사하여 우리의 미래까지도 확신하는 우리 영주교회 성도들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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