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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행3:1-10

제 목: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초대 교회 부흥의 역사에 불을 당긴 인물은 들어나게 위대한 사람이나 특별히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보잘 것 없고 모든 사람들이 희망이 없다 생각하던 장애인으로서 구걸하던 앉은뱅이였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본문의 말씀을 증거 하면서 사도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앉은뱅이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그들의 숨겨진 세계의(마음과 바라보는 시선)결과라는 사실을 은밀히 증거 합니다.

이 시간 저는 그 숨겨진 세계를 여러분에게 증거 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2023년 말세의 징조가 드러나는 시점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9월의 마지막 시간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과 태도를 앉은뱅이를 바라보는 사도베드로와 요한의 숨겨진 마음을 찾아 증거 하려 합니다.

 

1. 앉은뱅이의 상태.(2절)

 

본문 말씀 속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제 구시(오후3시)에 미문이라는 곳을 지나 성전으로 기도하러 갑니다. 기도하러가는 도중에 미문이라는 곳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보게 됩니다. 그의 모습은 참으로 절망적인 불쌍한 모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증거 하는 이 사람의 모습은

 

①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며 그의 삶의 무게가 무겁고 아팠던 그래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삶이 그의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이정표였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②사람들이 메어주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입지 않고는 스스로는 행동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 그의 인생은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입어야만 그나마 구걸이라도 하면 살수있던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즉 중증의 앉은뱅이였던 것입니다.

 

③성전 문에서 사람들에게 구걸했습니다.

당시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인식보다 하나님께 제물로 합당치 않은 부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성전에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인격이나 자존심은 생각 할 수도 없는 조롱과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앉은뱅이도 먹고 살아야 했기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즉 구걸을 통해 살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신23:1)

 

2. 앉은뱅이에 대한 교훈.

 

오늘날 앉은뱅이는 본문의 앉은뱅이의 모습처럼 미래를 내다볼 수 없으며 남의 도움이 없으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성도로서 이는 성전 문 앞에서만 서성이는 사람으로서 성전에 들어가 깊은 은혜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세상을 버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람이요 도무지 영적으로 자라나지 못하는 사람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혹여 우리가 영적 앉은뱅이의 자리에 있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시기바랍니다.

 

3. 앉은뱅이를 바라보는 사도베드로와 요한의 시선.(6-7절)

 

그런데 이런 앉은뱅이를 사도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 하러 가면서 보게 됩니다. 그를 베드로와 요한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요? 오늘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이 여기에 숨겨져 있습니다. 때로 우리가 바라보는 그들은 도움을 주고자 바라보는 사도를 다른 모습으로 바라보기도합니다. 본문3:4-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이 말씀에 앉은뱅이가 우리를 보라하는 사도베드로와 요한을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았을까요? 분명 6절에 베드로와 요한이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어떤 금전적인 돈이라도 받을 걸로 소망하며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이 때로 나와 다른 생각, 나하고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음과 눈은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는 것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눈으로 때로 주어진 은혜의 사명으로 그들을 바라 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베드로가 앉은뱅이에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늘 이 말씀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때로 나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시선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과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은과 금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으로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전에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실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마16:16절에 베드로가 고백한 예수님에 관한 믿음이며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입니다. 나아가 눅5장11에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으니라.” 는 말씀 속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확신하고 결단했던 참 신앙 그것으로 앉은뱅이를 바라본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을 발견하고 자기를 발견한 모습 즉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고백을 담은 은혜의 시선이었을 것입니다. 이로서 죄인과 같은 자신을 구원하신 그 믿음과 은혜를 가지고 앉은뱅이를 베드로는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며 그 안에서 구원 얻었음을 확신합니다. 이 확신을 가진 마음과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진정으로 안타까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고치고자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바라봄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이며 긍휼의 마음입니다.

 

②예수님의 능력으로 고쳐주실 것을 확신하는 마음이며 시선입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선포합니다. 즉 그를 지극히 불쌍히 여겨 고쳐주고자 하는 간절함이 그의 마음이며 그러한 마음이 하나님의 역사를 불러올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갑자기 3:7절에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가진 믿음에 대한 결단입니다. 그렇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켜 건강케 하고자하는 진실하고 간절함이 베드로의 마음이며 시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외치면서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이러한 모습으로 열매 맺기를 사모합니다. 그러면 그 숨겨진 시선은 또 다른 역사를 불러올 것입니다.

 

4. 더 나은 기쁨을 소유한 앉은뱅이.

 

앉은뱅이가 고침 받은 이후에 나타난 그의 삶의 역사를 살펴봅시다. 고침 받은 후에 보여준 앉은뱅이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저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일어서자마자 성전에 들어가 뛰기도 하고 걷기도 했으며 하나님을 찬미하며 사도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자신을 고친 능력을 곧장 증거 합니다. 즉 그의 또 다른 소원은

 

①뛰어서 걷는 것입니다.

물론 인생의 눈으로 볼 때 불가능한 소원이며 희망이 없었으나 앉은뱅이는 그 소원을 이루었고 그 기쁨을 모든 사람 앞에 보여주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②성전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성전 문에서 구걸하면서도 그는 죽기 전에 성전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가 장애를 고쳤을 때 그는 그 소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제일먼저 성전에 뛰어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이제 모든 사람 앞에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 들어가 뛰기도 하고 걷기도 했으며 하나님을 찬미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진실이었습니다.

 

③자신을 고친 능력을 자랑하고 싶은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 꿈이 현실이 되었고 그는 사도들을 붙들고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소개합니다. 즉 그가 바라보는 시선이 잠시전의 앉은뱅이의 마음과 시선이 아니라 이제 그는 새로운 시선 즉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면 고침 받을 수 있다는 시선을 그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후에 자신을 고친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의 소개를 시작으로 베드로가 힘을 얻어 솔로몬 행각에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말씀을 전하며 회개를 촉구했을 때 하루에 5000명이나 되는 사람이 구원을 받았으며 그로인해 초대교회는 견고하게 시작되는 역사를 경험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들 우리의 시선은 그래서 참으로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비밀인 것입니다.

이 앉은뱅이가 자신의 인생과 삶이 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초대교회를 세우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셨던 것처럼 미래에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그 약속 성취의 중심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잠시 전 그는 정말 가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시선은 그를 세상을 변화시키는 또 다른 역사를 불러왔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이러한 미래를 위해 남은 시간 베드로와 요한이 가졌던 마음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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