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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룻4:13-22

제 목: 자유를 찾은 여인 룻의 여정.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말씀처럼 시작은 희망이 없었으나 결과는 심히 창대케 된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요. 그는 이스라엘 여인이 아닌 이방 모압 여인 룻이었습니다. 그녀는 결과적으로 이방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받은 여인으로서 그녀는 모든 택한 백성들에게 믿음의 조상으로서 자유의 역사를 선물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 2023년 우리가 걸어가는 자유의 구체적인 걸음이 룻을 통해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걸음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저와 여러분들도 이러한 자유의 세계를 걸어가며 미래를 남겨놓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1. 자유의 걸음에 무거운 짊.

 

나오미가 모압에 내려가 실패한 뒤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려고 작정한 뒤에 그녀는 두 며느리를 데리고 고향 길에 올라섭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얼마 가지 않아 두 며느리들에게 이야기합니다.

 

1:8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1:9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①그녀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계대 혼인법을 따라 그들과 혼일 할 수 있는 자녀도 없었고, 모압으로 내려가 실패했기에 고향으로 돌아가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룻이 나오미를 따라 고향에 왔지만 다른 사람의 밭에 가서 이삭을 주워다 먹고 살았겠습니까? 그러므로 나오미에게 두 며느리는 큰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②그녀들은 이방 여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이방인과 혼인하지 않으며 이방인과 혼인하는 것을 불순종한 사람으로서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정서가 그 며느리들을 용납할 수 없으며, 더욱이 나오미가 그녀들을 고향에 데려간다는 것은 자신의 불신앙과 실패를 공표하는 것으로서 동족들에게 더욱 멸시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오미는 고향에 돌아오며 고향사람들에게 나를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 하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가 두 며느리를 고향에 데려간 다는 것은 큰 짊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며느리들 편에서 본다면 그들은 당시의 정서상 한번 혼인한 여인이요. 과부로써 그들이 자기 동족에게 돌아간대도 그녀들은 환영받을 수 없는 여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큰며느리 오르바는 돌아갔고 작은며느리룻은 그래도 어머니를 따라 나섰으며 나오미는 룻의 결심을 보고 그를 데리고 자기 고향에 돌아온 것입니다.

 

③두 며느리는 나오미에게 고통의 그림자였기 때문입니다.(룻1:13)

나오미는 자신뿐 아니라 과부된 두 며느리를 볼 때마다 그 마음이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방인 두 며느리는 자신과 남편의 불신앙의 열매로서 결국 그들을 실패에 동참케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 아픈 기억을 짊어지고 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오미의 짊은 사실 그녀의 불신앙의 아픈 기억들로서 자유의 걸음에 이러한 아픔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어머니를 따라나선 룻.

 

어머니의 말씀에도 룻은 어머니를 따라 나서겠다고 결심합니다. 그것은 성경을 보면 룻이 선택할 때 그녀가 지혜롭고 명석한 여인이어서 계산적으로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선택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룻이 어머니를 따라 나선 모습이나, 섬기는 모습, 그리고 그녀에 대한 평가를 보면, 룻은

 

①순전한(착한)여인입니다.

그저 어머니의 신앙과 어머니를 향해 효를 다하겠다는 착한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문화, 환경, 멸시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것이며 그 어머니를 공경하기 위해 이삭줍기에 나서 어머니를 공경했던 것입니다. 또한 어머니를 봉양하기위해 이삭줍기에 나선 그녀의 진실 되고 착한 모습에 베들레헴사람들에게까지 소문이 나고 보아스가 감탄한 것을 보면 룻은 착하고 선한 여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룻2:11)

 

②어머니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여인입니다.(룻2:22-3장)

보아스가 자신의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소식과 더불어 보아스의 발치에 누우라. 하고 그에게 말하라. 한 대로 룻이 말한 것을 보면 룻은 어머니 나오미의 말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만약 세상에 속한 여인들처럼 자신의 형편만 판단했다면 순종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룻은 소년여자요 보아스는 나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룻은 어머니의 가르침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물론 룻이 전혀 어리석은 여인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효와 순종은 그녀가 하나님 안에서 구원의 백성으로 선택된 믿음으로 판단하는 지혜로운 여인이라는 사실을 결과적으로 증명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③현숙한 여인입니다.(룻3:11)

룻은 베들레헴에서 이방여인으로써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알고 삼가 조심하였고, 며느리로써 자신의 위치를 알고 어머니를 공경하였으며, 과부로써 자신의 위치를 정절로써 지킨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보아스는 룻에 대하여 네가 현숙한 여인인 것을 나의 성읍백성들이 다 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룻은 어머니를 따라 자기 동족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왔지만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 듣는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룻이 그녀의 불투명한 미래를 자유의 세계로 아름답게 바꾸었던 그녀의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먼저 효를 다하는 룻의 모습에 있습니다. 그 모습은 자기를 생각지 않고 어머니를 불쌍히 여기며 섬기려는 선한 마음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선한 마음 이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자유의 걸음입니다.

 

3. 룻의 자유의 걸음.

 

룻은 분명 선하고 착한 모습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까요? 그녀에게는 분명 그 마음속에 선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①하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룻1:16-18)

자기 동족과 동족이 믿는 신앙보다도 어머니를 따라 나섰고 어머니에게 자신의 결심을 고백하는 그녀의 모습 속에는 그녀가 무엇을 선택했는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룻1:16-17절에서 룻은 말합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

 

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의 미래가 본문에 등장하는 믿음의 조상들을 낳는 아름다운 자유의 미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그녀의 선택에 있었던 것입니다.

 

②어머니의 신앙입니다.

룻은 세상의 여러 가지 환경과 물질을 보지 않고 어머니가 가진 신앙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믿었고 어머니가 가는 곳에 나도 가고 그곳에서 자기도 죽겠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 땅에도 과거 믿음의 선진들이 신앙 따라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나그네 되었습니다. 왜정시대에 만주로 건너간 많은 인물들. 독립운동뿐 아니라 신앙을 지키기 위해 그곳으로 떠나간 사람이 많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처럼 룻의 자유의 길은 어머니의 신앙의 길을 나도 가겠다는 결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녀의 미래를 자유케 하시며 그녀가 생각할 수 없는 축복의 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그 축복은 이방여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축복으로서 그것은 장차오실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축복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③자기의 사명을 잊지 않은 것입니다.

룻의 사명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녀가 며느리로써 기업을 잃어버린 나오미의 기업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그녀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의 밭에 들어가고 어머니의 말을 통해 그가 기업 무를 자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위치나 연소한 것은 생각지 않고 오로지 어머니의 말을 순종해 보아스의 발치 이불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러한 룻의 아름다운 선택을 하나님은 보시고 그녀에게 무너져 버린 나오미의 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그 자신은 이방인으로써 감히 상상도 할 수도 없는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윗의 증조모요 이새의 할머니이며 오벳의 어머니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자유의 세계는 바로 이러한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결국 자유의 길은 룻처럼 이 땅에서 자유의 세계를 회복시키는 길이요 그 자유의 세계가 믿음의 계대를 이어가도록 놓는 징검다리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그녀의 미래는 영원한 천국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의 걸음이며 구체적인 자유의 길입니다.

이제 2023년 우리영주교회성도들은 룻과 같은 자유의 길을 걸어간다면 2023년 우리의 미래에 오벳-이새-다윗-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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