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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단4:23-27

제 목: 스스로에게 속지 말라.

 

여러분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주범이 누구인지를 살피는 시간을 갖고자합니다. 그것이 누구일까요? 그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하는 주범이 2차적이거나 3차적인 타인에 있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1차적인 자신에게서 출발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가장 가까이 있지만 쉽게 깨닫지 못하는 우리자신들의 어려운 숙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느브갓넷살왕은 다니엘을 통해 그가 군 꿈의 내용과 더불어 자신의 미래를 경고 받았음에도 깨우치지 못하였다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는 징계를 받아 짐승과 같은 고난의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다가 실패하는 사람들이 부지기 숫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리에 있지 말고 겸손하여 자기를 지킵시다.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 감당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그러한 모습들을 살피고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스스로 속는 자.

 

오늘 본문에 나오는 느브갓넷살왕은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바벨론제국을 세워 당대 가장 강대한 국가를 세운 위대한 왕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위치가 자신을 스스로 속여서 위기를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그 속이는 증거가 단4:30절 말씀입니다.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지만 이러한 고백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이 낮추시면서 하늘이슬에 젖은 짐승과 같은 상태로 7년간의 시간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한 고난의 시간이 지난 후에 그는 회복되고 이후에 그는 제일 먼저 하늘을 우러러 보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처럼 느브갓넷살왕처럼 스스로 속았던 많은 인생들이 지금도 우리 앞에는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스스로 속도록 끊임없이 역사합니다. 그 역사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오늘 이 시대의 우리의 숙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느브갓 넷살을 생각하며 어떤 모습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모습인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스스로 속이는 자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가인이나 아합 그리고 느브갓넷살을 들어 그 특징을 살펴보면, 이들은 모두

 

①자신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가인입니다.(창4:5-7) 그는 자신의 제물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는 것을 보고 창4:5에 보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 스스로 믿음 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4:6-7절까지 하나님이 그에게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

 

는 경고를 받았지만 그는 결국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동생 아벨을 도로 쳐 죽이는 처음 살인한 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죄를 드러내고자 가인에게 “동생이 어디 있느냐” 고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 가인은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라고 자신의 죄를 감추고 오히려 항변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영원히 저주받은 자로서 지옥방 1호가 된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인물을 생각해보면 그는 이스라엘 왕 아합입니다. 왕상18:16-18절에 보면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가다가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라고 엘리야에게 외칩니다. 그때에 엘리야는 아합에게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다”

 

고 외칩니다. 즉 아합은 자신의 불신앙의 악한 모습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왔음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흑암에 사로잡혀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은 자기가 죄를 지었는지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은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자만심과 아집에 빠져 자신의 행위는 정당하다고 판단하는 어리석음이 그 스스로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속이는 자는 자신의 생각은 항상 정당하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속은 자입니다.

 

②자기의 교만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느브갓넷살왕을 보십시오. 그는 스스로를 나는 완벽하다고 생각하여 내가 이 모든 것을 했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잠16:18절의 말씀처럼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며” 잠18:12의 말씀처럼 “멸망의 선봉”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또 다른 교만한 사람을 하나 더 생각해본다면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입니다. 그가 처음 왕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그는 참으로 겸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된 얼마 뒤에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욕심을 앞세우는 사람이 되었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제사장 자리에 스스로 섰다가 결국 흑암의 고통 중에 큰 죄만 더하는 인생을 살다가 길보아에서 전사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는 자는 교만합니다. 혹시 여러분 교만하신 적이 있습니까? 바울처럼 나의 약할 때에 강함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됩시다.(고후12:7-10)

 

③오로지 세상에 표준을 두고 삽니다.(창6:2, 롬8:5-7, 요일2:15-17)

스스로 속이는 자는 자신의 육체 즉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목표를 두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그 삶을 정당하게여깁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에게 미혹된 것처럼 언젠가 우리도 살며시 이러한 유혹 속에 풍덩 빠져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야고보가 경고하는 것처럼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는 메시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약5:1-8절의 말씀도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④자기를 먼저 사랑합니다.(딤후3:1-5)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그 중심에 자기가 우선이라는 사고 이것이 말세의 특징적인 고통을 불러오는 스스로 속이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성경을 들여다보면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사시지 않았습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 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요10:11-12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당신을 내어놓고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는 영혼들을 구원하기위해 사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행7:59-60에서 순교하는 스데반집사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어떤 생각이드십니까? 우리는 자기를 먼저 사랑하는 삶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주와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를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2. 미혹하는 자들의 미끼.

 

미혹하는 자들은 스스로 속는 자들에게 미끼를 던집니다. 그 미끼가 무엇일까요?

 

①욕심입니다.(엡4:19)

창3:4-5에 뱀이 하와에게 미끼를 던집니다. 네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미끼입니다. 하와는 그 미끼에 걸려들었다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아담과 더불어 먹고 영이 죽어 에덴동산에서 쫒겨 났습니다. 이처럼 미혹하는 자들은 욕심의 미끼를 던집니다. 그래서 약1:14-15에도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썩어져가는 구습을 쫒는 욕심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되어 하늘에 속한 거룩한 욕심으로(빌1:20-21, 3:10-14, 딤후4:8)미혹하는 자들의 미끼에 걸려들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②자유를 준다는 것입니다.(갈5;13, 벧후2;19)

미혹하는 자들은 성도들에게 접근하여 자유를 준다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는다. 당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 라고 유혹을 던집니다. 그리고 우리교회는 운동부서, 문화교실이 있다. 영어를 공짜로 가르쳐준다. 라고 교회의 예배중심의 답답한 분위기가 없는 자유로움이 허락된 교회라고 미끼를 던집니다. 여기에 걸려들면 얼마 뒤 그는 자신이 누구며 무엇해야 되는 사람인지도 모르며 결국 성령의 감동이 없는 흑암의 구렁으로 들어간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의 본질과 여러분의 정체성을 망각한 자유의 속삭임에 주의 하십시오. 그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③잘 되고 형통한다는 속삭임 입니다.(요삼1:2)

교회 나오면 사업이 잘되고 건강하고 자녀들도 잘 된다고 유혹을 던집니다. 물론 인생으로 살면서 잘 된다는 것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세상에서 잘 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며 개개인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변화 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벗어나 오로지 세상 적으로 잘되는 기복신앙의 미끼에 걸려들면 그는 더 이상 제자의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또한 어느 목사님이 기도해 줬더니 사업이 잘 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기도 한번 받아보라는 유혹은 기독교 무당이라고 할 수 있는 좋은 미끼입니다. 이러한 미끼에 걸려들면 그의 영혼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미혹하는 자들의 미끼에 걸려들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미끼에 걸려들지 않을 까요?

 

3. 스스로 속지 않는 방법.

 

①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잊지 말라.(잠16:2,9,삼상2:6-8)

다니엘은 이야기합니다. 느브갓넷살왕이 하나님의 징계로 짐승이 되고 일곱 때를 지나 회복되었을 때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 것이라고. 즉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나라의 주인이심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서 우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고 그 하나님의 그늘 아래 살도록 여러분의 마음과 목표와 삶을 점검하여 살 때에 여러분은 미혹하는 자들의 미끼에 걸려들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속는 자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②공의를 행하라.(단4:27상)

오늘 본문 27절에 느브갓넷살에게 다니엘은 당부합니다.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라.” 이 말씀은 당신을 왕으로 세워 큰 제국을 건설케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즉 그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은 자신이 가진 권세로 세상에 공의를 행하라는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의 위치와 삶에 있어 사명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그 삶을 찾아 살아간다면 그는 미혹 받지 않을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지켜야 될 공의는 하나님의 말씀순종이며 그 앞에 정직하게 살아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거짓된 자들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것이며 스스로 속는 자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③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라.(잠19:17, 잠29:14, 단4:27하)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치와 목표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줍니다. 즉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사는 가운데 인생의 가치와 미래에 대한 삶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줍니다. 즉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를 실천하는 삶의 목표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어떻게 빛을 비출 것인가에 대한 답이며 자신의 인격을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 가느냐에 대한 답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습은 그리스도인의 고상한 가치관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스스로 속는 자가 되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주인이 되고 욕심이 목표가 되고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인격을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삶의 가치는 저와 여러분을 속는 자가 아니라 미래에 충성된 종이라 약속을 받는 지혜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시대적으로 미끼를 던져 우리를 유혹하는 세력에서 자신을 지키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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