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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히11:1-2, 17-19

제 목: 도로 받은 것이라.

 

부활의 기쁨이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 기쁨은 오늘 본문 1절의 말씀처럼 믿어지는 자에게 주시는 기쁨의 역사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 기쁨의 역사를 오늘 저와 여러분 다시 경험하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부활의 정의.

 

부활(復活, 아나스타시스)은 생물학적으로 생명활동이 완전히 정지된 생명체가 소생하여 다시 되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부활을 국어사전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 이라고 해석합니다. 이것을 다시 우리 신앙의 기준으로 풀어본다면 죽었던 육체가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남이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즉 단순히 죽었던 육체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이전 몸과는 다른 신령한 몸으로 다시 그 육체가 살아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2000년 전 예수님의 부활이 이런 모습이었고 오늘 우리의 미래에 경험하게 될 부활의 육체 또한 이런 몸이 될 것입니다.

 

2. 믿음의 선진들이 가진 과거 부활신앙.

 

구약에 보면 이미 부활의 신앙을 미리 보여준(예고한) 2번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첫째는 아담의 7세손 에녹이었고,(창5:21-24, 유1:14-15) 두 번째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요 아합시대에 이스라엘의 등불로 사용되었던 선지 엘리야였습니다. (왕하2: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그런데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과 연관된 히11:35에 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에 대하여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라는 말씀과 더불어 38절에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과거 믿음의 선배들은 이미 부활신앙으로 세상을 이기며 그 부활신앙을 맞보고 언젠가 있을 부활의 역사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부활신앙은 오늘 우리의 것만이 아닌 수천년 전 이미 신앙의 선배들이 경험하고 사모했던 역사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3. 히브리서 기자가 증거 하는 아브라함이 가진 부활신앙.

 

오늘 본문에 증거 되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가 가진 믿음이 어떠한 믿음이었는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창22:1-10절입니다.

하나님은 창22:2절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그가 100세에 얻은 아들이삭을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에 데리고 가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즉시로 순종했는데 그가 어떠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는지 증거 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는

 

①행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모습은 18절 말씀처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고 전에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그는 의심치 않고 믿었는데요. 그 증거로서 그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모리아 산에서 올라갔으며 그곳에서 단을 쌓고 이삭을 결박하여 올려놓은 뒤 즉시로 칼을 들어 치려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그가 자신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실제적인 증거를 보여준 것입니다. 결국 그의 믿음의 행위가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부활신앙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부활의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을 아브라함처럼 행위로서 부활신앙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지식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처럼 실제적인 믿음의 행위로 보여주는 행동하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아브라함을 통해 배워야 될 첫 번째 부활신앙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2022년 여러분의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전 세계적인 분위기를 살펴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행함이 없어진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큰 위기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②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리실 줄 믿는 확신을 보여준 것입니다.(19)

본문19절에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즉 아브라함의 행위는 이미 이삭을 번제로 바친 것입니다.

그가 모리아 산 제단에서 이삭을 드릴 때 하나님은 이삭을 치려하는 아브라함을 급히 막으셨는데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삭을 번제로 이미 바쳤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떠한 믿음을 가졌다고요?

 

다시 19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이삭이 죽어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실제적인 믿음의 실천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져야 될 부활신앙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엊그제 친동생과 같은 동생을 천국으로 보냈습니다. 그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에 몽골에서 일정이 남아있으나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애통하며 기도했는데 제가 한국에 돌아와 재수씨와 작은 어머니에게 권면하면서 이미 동생은 천국에 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또 다른 시선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익은 열매를 보지 말고 현재 익어가는 열매를 바라보라고 권면했습니다.

오늘 저는 읽어가는 열매를 바라보며 여러분들에게 다시 당부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는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처럼 저와 여러분이 살아있는 부활신앙으로 현재를 승리하시길 소망합니다.

그러면 본문11:1절의 말씀처럼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저와 여러분들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부활의 신앙을 다시 회복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4. 부활의 결과.

 

부활은 죽었던 육체가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부활체의 미래가 어떠한 미래가 될 것인지 내다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즉 부활체가 단순히 죽었던 육체가 생물학적으로 살아나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신령하다는 말의 의미는

 

①다시 죽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체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났고 그 육체는 전에 육체와는 전혀 다른 죄가 없는 육체로 거듭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②실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천국의 시민입니다.

부활체는 예수님 재림 시 즉시로 천국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육체를 가진 부활체는 과거에 이미 중생한 영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③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세 번째로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후에 보여주신 모습이며 5번째로 베드로가 주동하여 다른 제자들과 더불어 갈릴리로 내려가 물고기 잡고 있을 때 그곳에 나타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더불어 음식을 나누시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눅24:35-43, 요21:5-14)

 

④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갑자기 나타나셨다가 갑자기 사라지시고 당신이 어느 곳에 가고자 하든지 그곳에 계십니다. 왜냐하면 신령한 모습은 바로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⑤왕이 됩니다.

부활체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히1:14에는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라고 증거하고 있으며 요한 계시록21장에 보면 천년왕국에서는 새 예루살렘 성에 거하며 땅을 다스리는 왕과 같은 존귀한 신분이 성도의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벧전2:9에는 구원 얻은 성도들에 대하여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증거 했던 것입니다.

 

⑦병이나 장애가 없습니다.

천국에는 생명나무가 있고 그곳은 완전한 곳이며 모든 것이 회복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젠가 누리게 될 부활체는 이러한 미래가 예비 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이러한 미래를 향해 아브라함과 같은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그러면 언젠가 그곳은 우리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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