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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8:1-11

제목: 죄에 대한 분별력을 가지라.

 

본문의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이 여인에 대하여 어떻게 말할 것입니까? 예수님은 저들에게 두 마디 말씀을 통해서 그들의 완악함을 들어내시고 동시에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제자의 길과 거짓된 자들을 분별하라. 오늘 우리는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의 자세와 태도를 잃어버리게 하고 우리를 미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때에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자신을 지켜 나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당부 드립니다.

 

1.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이유.

 

오늘 본문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예수님께 나옵니다. 이 여인의 간음은 현장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그 여인의 판결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인을 예수님께 끌고 온 이유는 올바른 법 집행을 몰라서 예수님께 끌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 앞에 이 여인을 끌고 온 이유는 분명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①예수님을 올무에 넣기 위해서 끌고 온 것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그동안 자신들의 거짓되고 이중적인 모습에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거짓이 더 이상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호시탐탐 예수님을 넘어뜨릴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이 발견되고 그들은 그 기회가 찾아왔다 생각한 것입니다.

이 일로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예수님이 결코 그 시험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여인을 모세의 법대로 집행하라고 한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 하면서 사실은 긍휼이 없다거나 사랑이 없다고 선동하여 예수님을 정죄하려했을 것이고, 만약 예수님이 여인을 긍휼히 여기라고 한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고 선동하여 예수님을 정죄하려고 계획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저들의 생각에 꼼짝없이 올무에 걸려들었다 생각하고 여인을 희생양으로 예수님 앞에 끌어 온 것입니다.

 

②자신들의 욕심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욕심은 유대사회에서 자신들의 지위와 기득권을 끝까지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과 말씀들을 통해 영향을 받고 자신들의 기득권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것입니다.

이러한 저들의 모습은 요1장5절의 말씀처럼 어둠이 그들의 본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예수님의 진실한 모습을 보고도 돌이키거나 깨달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욕심을 빼앗는 경쟁자로 여겼던 것입니다. 결국 저들의 이러한 행태는 저들이 불택자로서 결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③예수님을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구원운동 방해)

저들의 최종목표는 예수님을 멸하는 것입니다. 즉 그 배후에 사탄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현재의 상황만 가지고 판단하며 치우쳐서는 안 되며 그들의 본질적인 목적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훼방하고 멈추게 하려는 사탄의 술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사탄에게 속아 그 방패로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끌고 왔던 것입니다.

2. 간음 죄에 대한 올바른 시선.(바리새인과 서기관의시선.)

 

본문에 등장하는 간음한 여인에 대하여 여러분들은 어떤 판단력을 가지고 계십니까? 분명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결과적으로 용서하신 것을 볼 때 그 죄를 용납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 올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 간음죄에 대하여 십계명과 계시록에 말하고 있습니다. 즉 간음하지 말라 하시고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간음죄는 불법이며 큰 죄입니다.

하지만 본문에 등장하는 간음한 여인은 정확히 그녀가 어떤 간음죄를 저질렀는지 알 수 없으며 이 여인은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한 희생양으로 사용되었기에 예수님은 이 여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나아가 이 여인에 대한 간음죄는 모든 인생들의 죄도 이와 같음을 교훈하는 메시지로 우리에게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이 용서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의 모습 또한 주의 긍휼의 힘을 입어 세상과 간음한 죄를 용서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러한 심령으로 죄인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3. 간음한 여인에 대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생각.

 

예수님 앞에 끌어온 간음한 여인에 대하여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들의 생각은 그들을 분별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①더럽고 추악한 사람.

저들은 자신들과 다른 아주 큰 죄를 지어 가까이 할 수없는 더럽고 추악한 멸시의 대상이라고 바라보았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위치와 사명은 모른 체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하는 그들의 영적 어두움 때문이었습니다.

 

②저주받은 사람.

간음한 여인은 모세의 법대로 하면 돌로 죽여야 되는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이나 사회윤리로 볼 때 구원 얻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도저히 용서 될 수 없고 용서받지 못할 저주의 죄를 지었으므로 그 여인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③나와 다른 사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간음 중에 잡힌 여인과 자신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율법의 요구를 준행하는 의로운 사람 즉 스스로 자기 의에 치우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의 답변요구에 아무 말씀 없이 땅에 글을 쓰시고 두 마디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말씀하시고 두 번째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4. 간음한 여인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모습.(올바른 생각)

 

①저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생으로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 대하여 그가 죄를 지었으나 그는 마귀에게 속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여인으로 보았습니다. 즉 창조 받은 인생은 언제나 자라나고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현재의 모습은 추악하고 더럽지만 그가 회개하고 바로 선다면 그는 변화되고 자라날 수 있는 인격체로 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모습들을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인생 중 많은 실수와 죄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형상으로 보셨기에 우리는 오늘 기회를 얻어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②구원의 대상자로 바라보신 것입니다.

눅13:11-16말씀에 18년 동안 귀신들려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인을 예수님은 안식일에 고쳐 주시면서 이가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땅의 어떠한 사람도 우리의 눈에는 구원 받아야 될 가능성이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③용서와 긍휼의 대상으로 보신 것입니다.

즉 가능성 있는 사람으로 보신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에게“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는 말씀은.” 이 여인의 죄를 벌써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그 여인은 용서와 긍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라고 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영주교회 성도님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만약 우리의 생각이나 시선이 바리새인 같다면 우리는 이러한 생각과 시선을 과감히 버려야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선을 회복해야합니다 그럴 때 거짓된 것을 분별하고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러한 자들을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영주교회는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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