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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요11:33-44

제 목: 믿으라.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추수의 시간이 가까이 다가올 때 우리는 모두 열매를 얻기를 소망합니다. 그 열매는 어떻게 얻는 것일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답을 명확히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본문 40절에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 말씀처럼 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열매는 이렇게 성취되어 질 줄을 믿습니다.

이 시간 이러한 확신을 갖기까지 우리가 넘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1. 나사로의 병듦과 죽음.

 

나사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요11:3에 예수님이 베다니에 있는 그의 집에 자주 가신 것을 보면 그는 요11:3절의 말씀처럼 주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그의 누이동생들도 주께 사랑을 받는 여인들입니다. 그들이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①예수님을 따르며 섬겼던 믿음이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믿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증거는 후에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씻은 모습 속에 드러납니다. 당시 어느 누구도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했으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명을 깨닫고 그러한 행위를 했던 것입니다.

 

②그리스도인으로서 헌신적인 섬김의 자세가 진실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서 자주 말씀을 전하시고 그 집에서는 찾아온 사람들을 음식으로 공궤하고 대접했다는 사실은 당신의 여건상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르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그러한 삶의 행위가 진실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르다의 행위에 있어서도 그녀를 인정하되 말씀 듣는 것을 더 힘쓸 것을 당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정의 호주인 나사로가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잘 믿으면 잘되고 복 받아야 되는데 왜 나사로가 병이 나서 죽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표현은 사실 성경적인 가치관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가치관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 한계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재차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믿으라고 말할 때 그들이 끝까지 동문서답하고 낙심한 모습을 버리지 못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나사로의 죽음은 세상의 기준과 판단으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의 세계라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가 현재 죽은 사건의 최종 그림은 죽은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서 예수님이 메시야 되심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명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요11:4)

 

이처럼 오늘 우리도 완성되지 않는 그림을 그려가며 2022년을 걸어갑니다.

당장 현재의 그림은 완성되지 못했어도 예수님이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요청하신 믿음만 있다면 그 그림의 최종 목적지는 해피엔딩이라는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완성해 가는 길에 넘어야 될 산(걸림 돌)이 있습니다. 그 산이 무엇일까요?

 

2. 산(걸림 돌).

 

믿음을 가지는데 큰 관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리아와 마르다가 육신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과 그들의 현재의 생명과 문화가 이 땅에 존재하며 살아간다는 진실입니다. 그 세계에서 배운 가치관과 문화는 그들을 나사로의 죽음에서 해방시키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걸림돌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다니에 오셨을 때부터 계속 울고 슬퍼하며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안 죽었을 것이라 말하는 두 자매에게 믿으라.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죽음만 붙들고 예수님을 원망하며 불신앙의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민망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응답받고 그 역사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낙망하고 슬퍼하며 좌절한 마음에서 돌이키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의 제자 중 도마는 눈으로 보고 만져보기 전에는 못 믿겠다. 라고 고백하겠습니까.(요20:25) 오늘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2022년과 우리의 미래에 열매를 얻고자한다면 이 걸림돌 즉 이 산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역사처럼 열매를 경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을 통한 우리의 점검.

 

예수님이 베다니에 오셨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 나온 마르다는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안 죽었을 거라 하면서 예수님을 원망하는 모습과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줍니다.(21,32) 그러면서도 자신의 오빠가 마지막 날 부활에 다시 살줄을 확신한다고 고백합니다.(24) 그리고 또 23절에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실 줄 안다고 말 하면서도 결과적으로 39절에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어서 냄새가 난다.” 라고 고백합니다. 즉 지금 현재 죽은 오빠가 살아날 것이라는 전혀 생각지 못한 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왕좌왕하는 신앙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도무지 확신이 없고 왔다 갔다 합니다. 아마도 오빠가 죽었으니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열매를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허공에 대고 정신없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25-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며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할 때도 마르다는 27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에 다가서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실 때 마르다는 또 다시 무어라고 말합니까? 39절에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어서 냄새가 난다.” 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능력을 막고 경험하지 못하는 신앙의 자취가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를 수 없이 외치면서도 정작 세상적인 가치관과 현실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께서 돌을 옮겨놓으라 할 때 불가능하다 안 된다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모습이 2022년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40절에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이 말씀은 지금 죽은 나사로를 예수님이 당장 살릴 줄 믿으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세상을 이기고 능력 있는 담대한 모습으로 열매를 맺는 방법 그것은 이것입니다. 믿으라.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나님은 과거 홍해 앞에 선 모세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출14:13-16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그러므로 여러분 2022년 우리가 열매를 하나님께 가져오고자 한다면 분명 우리는 마리아와 마르다가 가진 걸림돌을 제해버리고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믿음의 결단을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43절에 예수님은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시고 나사로는 다시 살아나 나오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열매를 주 앞에 가져오시길 저는 소망합니다.

이러한 열매로 어지러운 세상을 승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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