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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시127:3-5

제 목: 자녀를 바라보는 인식을 바르게 가지라.

 

저는 얼마 전 tv에서 송어가 마지막 산란을 위해 힘을 다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자연의 섭리 속에 매미의 인생을 다룬 곤충 다큐멘터리와 같은 화면을 본적이 있는데 이 두 화면의 공통적인 모습은 작은 곤충이나 물고기도 자신들의 미래를 남겨놓기 위해 자연에 순응하며 최선의 힘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에 비추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우리의 인생은 어떤가 생각해보면 때로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은 그저 자신만을 살다가는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 남겨놓고 가는 이정표와 같은 시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서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미래를 위해 여러분의 자녀를 두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1. 믿음의 후손들을 남긴 신앙의 인물들.(마1:2-16, 히11장)

 

5월 가정의 달에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면서 성경 속에 남겨진 신앙의 조상들이 그들의 후손들에게 남겨둔 것들을 살펴보면 그 특징은 ①낳고. ②물려주고 ③이어가고 이 3가지 특징적인 모습들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아벨과 셋을 낳고, 노아는 셈, 함, 야벳을 낳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도 낳고....... 그러므로 낳고 라는 말은 신앙의 조상들이 그들의 미래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믿음의 이정표입니다. 그리고 낳는다는 의미는 단순히 육체의 미래를 위해 육신의 자녀들을 생산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의미가 있을 까요?

 

2. 성경에서 낳는다는 의미.

 

①경건한 후손을 낳는 다는 의미입니다.

말2:13-16절에 보면 말라기 선지자는 유대백성들을 향해 그들의 아내에게 괴사를 행치말라고 경고합니다. 그것은 아내의 소중함은 믿음의 동반자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동반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경건한 후손을 잉태하고 낳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2:15에는 “여호와는 영이 유여(有餘)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고 말하며 유대백성들을 경고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낳는다는 의미는 단순히 육신의 자녀들만을 낳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는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성경에서 신앙의 조상들이 낳고 라는 의미는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자녀를 낳는다는 뜻입니다.

 

②약속의 자손을 낳는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자녀들을 낳았어도 그 낳은 자녀들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육신의 자녀만 낳았다면 그 낳았다는 의미는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속에 불신을 가진 가인의 후손들이 그렇고, 아브라함의 후처 애굽여인 하갈의 자녀인 이스마엘이 그렇고, 엘가나의 둘째부인 브닌나가 10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그들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없기에 그 자녀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낳는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위해 약속의 자녀를, 믿음의 자녀를 얼마나 낳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의 자녀는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녀를 하나님께 구하는 조상들의 낳고는 오늘 우리가 찾아야 할 우리의 숙제인 것입니다.

 

③바르게 양육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을 들여다보면 믿음의 부모를 통해 믿음의 계대가 이어가는 모습이 항상 드러납니다. 그러한 모습들은 자녀가 부모의 신앙으로 바르게 양육 받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신6:7-9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낳고 라는 말은 단순한 태어남이 아니라 믿음으로 부모를 통해 그 자녀가 양육 받았다는 결과적인 의미입니다. 딤후3:14-15절에 보면 바울의 후계자 디모데는 그 어머니와 할머니를 통해 어려서부터 성경으로 양육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3. 낳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바른 인식에 대한 선포.

 

오늘 시편기자는 자녀에 대하여 부모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교훈 합니다.

 

그 첫 번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3-5절 말씀이 그러한 의미입니다.

 

시127:3-5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러므로 자녀를 바라보는 인식은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라는 사고에서부터 시작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자녀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그 안에서 양육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으로 양육하려 할 것입니다. 아까도 언급했던 디모데는 딤후3:14-15절에 그 어머니와 할머니를 통해 어려서부터 성경으로 양육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초대교회의 기둥이 된 것입니다.

 

둘째는 기업이요 상급이라는 인식입니다.

본문 3절에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즉 자녀가 부모의 축복을 만들어 주는 기관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과거 한국에서도 자녀들을 좋은학교에 보내고 좋은 직장에 취직시키려는 부모님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소원하는 행위는 우리의 신앙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즉

우리의 자녀들이 기업이라는 인식은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주는 기관으로서 기업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결과는 수고의 댓가로 얻는 열매 로서 부모의 상급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당부한 메시지 속에 그러한 숨겨진 모습이 들어있으며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와 디모데에게 고백한 메세지 속에도 그러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신앙의 열매를 자녀가 많이 맺으면 그로인해 나의 기업도 상급도 커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9:18에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는 말을 통해 고린도교회를 위해 더욱 희생하는 것은 너희가 나의 미래의 상급이 될 것을 확실했다는 고백일 것입니다.

 

셋째로는 대적과 싸워 이기는 용사라는 인식입니다.

본문 4-5절에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127:5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 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즉 젊은 자의 자식은 깨어있는 성도로서 능히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분별력 있는 자녀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부모들이 자녀를 바라보는 인식은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자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식은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과 인도하는 방법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자녀를 낳고 그러한 자녀를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삼상2장에서 기도하는 모습 속에 이러한 믿음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와 여러분의 자녀는 마귀에게 날마다 지는 자녀가 아니라 마귀와 싸워서 이기는 자녀로 성장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우리의 자녀들을 낳고 양육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때 시대의 어두움 속에서도 마귀와의 싸움에서 계속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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