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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눅10:29-37

제 목: 강도 만난 자를 도왔느냐.

 

지난 목요일 시골에서 추수하는데 예년보다 수확량이 1톤이상 벼가 줄었습니다. 저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곳이 동일합니다. 흉년이 들었습니다. 수해로 인해 그렇기도 하지만 이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확신이듭니다. 앞으로 15일이 지나면 추수감사절이 돌아옵니다. 이러한 시기가 되면 항상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살피는 습관이 있는데 올해도 과연 얼마나 하나님 앞에 열매를 남겼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올해는 시골에서 벼 추수가 흉년을 만난 것처럼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삶을 돌아보고 열매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이러한 숙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교훈은 전에도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고 있는 우리의 존재와 그 부르심 앞에 과연 우리는 그 은혜를 감당하고 있는가하는 답을 얻게 하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올해는 바이러스의 확산과 더불어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복음사역에 치명타를 받았고 기독교인에 대한 인식이 무척 퇴보한 한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도록 막는 세력 앞에 백성들은 흑암과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으며 그들의 삶은 더욱 고통스럽고 절망중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또한 보게 됩니다. 이러한 가운데 저들을 바라보는 시각만이라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의 모습으로 다가섰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존재 이유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율법사의 대답.

 

율법사가 예수님께 찾아와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라는 질문이며 둘째는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후에 자신을 옳게 보이고 싶어서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고 반대로 질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율법사는 진정한 이웃의 삶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예수님께 질문한 목적이 예수님께 배우고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기하여 시험하여 넘어뜨리기 위해 질문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과 은혜 받은 자로서의 위치가 중심이 된 질문이 아니라 불신자처럼 불신과 시기 그리고 무너뜨리기 위한중심이 된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러한 그의 마음을 아시고 비유로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교훈하시며 진정한 율법사의 위치를 돌아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이후에 “누가 네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10:36절에 물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도 누가 네 이웃이 되겠느냐는 질문 앞에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10:37절에 보면 율법사는 예수님의 질문 앞에 “자비를 베푼 자”라고 말합니다. 즉 그는 예수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이기심을 내려놓지 않은 체 둘러댄 것입니다.

이러한 율법사처럼 우리의 모습을 살아간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난 시간을 점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에 빛진 자로서, 사명을 가진 자로서 말씀에 다가선다면 그 답을 정확히 이해 하게 될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입니다. 라고

 

2. 강도 만난 자.(30)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거반 죽게 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이 여리고에서 강도를 만난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모습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내려가는 모습이요 믿음으로 살던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고 나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강도를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진리를 버리고 떠난 사람이요.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다 강도를 만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 등장하는 강도는 실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고 사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강도들이 이 땅에 넘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교훈 속에는 강도에게 당한 이 사람을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또는 그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위치와 사명의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 예수님의 교훈에 대한 답을 쉽게 얻을 것입니다.

 

3. 제사장과 레위인.(31-32)

 

강도 만난 자를 먼저 발견한 제사장과 레위 인이 31-32절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강도만난 자를 보고도 못 본 척 지나갑니다. 그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요 백성들의 신앙을 바르게 인도하는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강도 만난 자를 못 본 척 지나갔습니다.

이는 그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제사장과 레위 인이 아님을 시사 하는 것이요.(표면적 유대인) 마23장에서 예수님이 경고하던 의식주의와 형식주의로 살아가던 무니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들이 백성들을 지도하거나 가르칠 때 무어라 말했을까요? 이들은 오늘날 누구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혹여 우리가 이러한 무늬만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2020년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한 보습을 보여 주었는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4. 선한 사마리아인.(10:33-35)

 

강도 만난 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린 제사장과 레위인과 다르게 한 사마리아인은 그곳을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그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인이나 유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정통 이스라엘인이 아니요. 이방에서 굴러들어온 자로서 구원받지 못하는 부정한 백성이라고 치부하는 상종하지 않는 백성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동족도 못 본 척 지나가는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깁니다. 그리고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아줍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①강도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나와 환경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다 하여 강도 만나 매 맞고 죽어가는 사람을 모른 척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형편을 불쌍히 여기는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셨으며 이방인인 우리를 위해 목숨도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사마리아인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의 강도 만난 자들을 보아야 했을 것입니다. 2020년 여러분은 그렇게 하셨습니까?

 

②자신의 것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나누는 희생과 섬김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10:33-34)

자신의 것이 여행 중에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합니까?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의 형편이 너무 위중한 것을 보고 자기의 것을 모두 내어 놓습니다.

기름과 포도주, 자신의 의복, 자기가 타고 온 짐승 그리고 데나리온 둘을 강도 만난 자를 위해 주막주인에게 내어 놓은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인의 희생은 율법사나 제사장, 레위 인이 먼저 보여 주어야 될 당연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지나간 시간동안 우리는 율법사나 제사장, 레위인의 모습이 아닌 사마리아인처럼 자신의 것을 나누는 희생과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까? 그렇다면 금 번 추수감사절은 여느 때보다 기근이 찾아 왔어도 넉넉함이 여러분의 열매가 될 것이며 주님은 그 마음을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③끝까지 책임지는 마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35)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에게 베푼 선한 행실은 이 정도까지만 해도 그의 모습은 이미 하나님께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마지막까지 강도 만난 자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은 주막에서 이튿날까지 강도 만난 자를 돌보며 데나리온 둘을 주고 주막주인에게 부비가 더 들면 돌아올 때에 값아 주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저는 이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생각하며 참 이런 사람이 있을까? 벌써 저의 마음속에는 흐뭇한 감동이 찾아왔습니다. 즉 이 사람은 넉넉한 사람이구나. 희생적인 사람이구나. 라는 엄지를 들게 만듭니다. 이러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을 예수님은 왜 율법사에게 말했을까요?

그 답은 10:37절에 너도 이와 같이하라. 는 말씀 속에 이미 주었습니다. 즉 이방인 사마리아인도 사랑을 베푸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명을 가진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너는 소경이요 벙어리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나간 2020년 강도 만난 자를 발견하고 그들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품고 실지 희생했다면 올 2020년 우리의 추수감사는 넉넉함이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