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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3:5-11

제목: 선한 영향력을 끼치자.

 

저는 지난 주 미국 뉴욕 할렘가에서 공립학교 사역하는 이정진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큐 공감이라는 방송을 통해보았습니다. 그녀는 할렘가에 위치한 데모크라시 프렙 공립학교의 선생으로서 그녀의 수고와 희생의 선한 영향력은 절망적이고 도무지 미래가 불투명한 할렘가에 희망이라는 열매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주류 사회에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모습에 저는 목사로서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이 분처럼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 저와 여러분이 다시 일어서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증거 하려 합니다.

 

1. 헷 사람의 아브라함에 대한 고백.

 

오늘 이정진 선생님과 같은 선한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가 성경 속에서 그 모델을 찾아본다면 그 사람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가나안 7족속가운데 하나인 헷족속에게 자신들 가운데 계신하나님의 방백이라고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의 아내 사라를 장례 치르기 위해 헷 족속에게 장지를 구할 때 그들은 아브라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①내 주여 들으소서.(6)

헷 족속은 장지를 구하는 아브라함에게 내 주라고 고백합니다. 즉 내 주라는 말은 나의 주인이라는 고백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은 그 땅 백성에게 이방인이요. 나그네입니다. 그런데 헷 족속이 아브라함을 내 주라고 고백했다는 사실은 그가 그들 앞에 주인과 같은 모습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 모습은 창14:9-14절에 등장합니다. 엘람왕 그돌라오멜이 연합군을 모아 가나안 왕들과 싸울 때 가나안의 네 왕은 그돌라 오멜에게 전쟁에서 패하고 자신들의 소유와 가속들까지 모든 것을 빼앗겼고 그 틈에 롯도 붙들려 같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자신의 종들과 동맹한 마므레를 이끌고 그돌라오멜 5대 연합군을 격파하고 모든 것을 되찾아 돌아오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아브라함의 모습은 그 땅의 왕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내 주라고 인정하여 불렀던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선한 섬김의 모습이 그 땅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을 내 주라고 고백할 정도로 아브라함을 존경했다는 사실도 있을 것입니다.

 

②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방백이십니다.(6)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우리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고백합니다.

즉 방백이라는 말은 군주라는 의미로서 그들 가운데 왕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헷 족속의 고백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자처럼 하나님 앞에서 살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 증거는 아브라함의 기도와 그의 행함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도우시는 능력을 헷 족속이 분명히 보고 경험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때론 두려워하고 존경하여 우리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③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6)

헷 족속은 사라의 장지를 구하는 아브라함에게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라고 고백합니다. 즉 아브라함이 원하는 장지를 누구에게든지 요청하면 그는 거져 주겠다는 말입니다.

당시에 이 말이 그리 쉽지 않은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고대에 땅의 개념은 그들의 생명과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땅을 거져 주겠다는 그들의 고백은 그들이 아브라함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오히려 아브라함의 아내를 자신들의 땅에 장례 치르게 된 것에 영광으로 생각했다는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④에브론의 밭을 구할 때 에브론은 그 땅을 거져 주겠다고 고백함.(11)

아브라함이 마침 에브론이 가진 막벨라 굴과 그에 따른 땅을 필요로 했을 때 에브론은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거져 주겠다고 고백합니다. 즉 헷 족속의 고백은 가식이 아닌 진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에브론이 아브라함과 이야기하는 중 아브라함의 양보를 듣고 여러 번에 걸쳐 그 땅을 거져 주겠다고 설득하는 모습속에는 그가 아브라함에 대하여 무한한 신뢰와 존경심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밭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정당한 삯을 주고 그 땅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이러한 아브라함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보십시오. 시대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불신과 야유가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분명 아브라함과 다른 삶을 살고 있기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돌이켜 아브라함의 선한 영향력을 배워야 합니다.

 

2. 아브라함이 가진 선한 영향력의 실체.

 

그러면 헷 사람의 이러한 고백이 아브라함의 무엇을 보고 고백했을까요?

오늘 우리가 그 모습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창12-23장에 이르는 아브라함의 행적을 통해 그의 선한 영향력을 살펴보고 그의 선한 영향력이 오늘 우리의 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선한 영향력은 그가 가진 믿음의 기초위에 세워졌음을 증거 합니다. 그 믿음의 기초가 믿음의 열매를 낳았는데요. 그것은

 

첫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통해 나타납니다.

창12:1-4에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쫒아갔다고 증거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순종은 그가 가나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이정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사는 방백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들째, 양보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창13:5이하에 보면 아브라함은 자신의 조카 롯의 목자와 자신의 목자가 초장지로 인해 다투는 모습을 목도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창13:9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러한 아브라함의 고백은 비옥한 초장 지를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롯에게 양보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온전히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양보하는 선한 모습은 그 땅에서도 계속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헷 족속은 이러한 아브라함을 존경했던 것입니다.

 

셋째, 불가능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많은 인생이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물질을 초월하거나 현실을 능가하는, 불 가능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창14:9-14절에 그돌라오멜과 싸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창17:5-6, 21:1-7에서 사라의 경수가 끊어졌어도 후사를 주실 줄 믿었고 그 결과 이삭을 얻는 축복을 보여주었으며, 창22장에서는 그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묵묵히 순종하여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신앙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아브라함의 신앙을 헷 족속은 인정하고 존경하여 그를 하나님의 방백이라 고백했던 것입니다.

 

넷째로는 그의 담대함입니다.

창14:9-14에서 그돌라 오멜과 싸우러가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상기해보십시오. 만약 우리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당시 가나안의 어느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방인이요. 자신의 친척이라곤 롯밖에 없는데도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일어섰습니다.

즉 그가 생명을 내놓고 자신의 조카를 살리는 모습과 나아가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 정당한 분깃 외에 전리품을 패한 네 명의 왕들에게 모두 돌려주는 욕심 없는 모습은 가나안 사람들과 헷 족속에게 큰 울림을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헷 족속의 아브라함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은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위를 보고 그의 선한 영향력의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다섯째, 그의 섬김의 자세입니다.

창18:1-2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을 지나가는 3명의 나그네를 강권하여 붙듭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자신을 지극히 낮추며 떡과 송아지를 잡아 대접합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위는 그가 어떤 사람도 자기 집에 오는 자를 거져 보내지 않고 섬겼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에 농경과 목축사회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나아갔을 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실제 섬김의 자세입니다. 그 섬김의 자세가 헷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은 아브라함을 주와 방백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영주교회는 이러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들을 회복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 세상 사람들로 부터 다시 존경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선한 영향력에 동참하기를 깨닫는 여러분들에게 주의 축복이 함께 하시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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