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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눅19:1-10

제 목: 이분법의 미혹에서 벗어나라.

 

오늘 우리는 시대를 2분법으로 바라보는 유혹에 미혹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정치도 내편 아니면 적이라는 식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어떤 분이 저에게 전화 오셔서 국민 혁명당에 입당을 권하더군요. 저는 입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속에 이 정권이나 자신과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은 다 잘못되었고 뒤집어야 할 대상이더군요.

오늘 우리는 이러한 유혹에 미혹되지 않았나요?

만약 우리가 이러한 사고라면 오늘 본문의 예수님이 당시에 죄인이라 상종치 않던 삭개오를 만난 것은 지극히 잘못된 결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마22:37-39, 막12:31, 요15:12) 그러므로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삭개오를 찾아오신 모습을 통해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 예수님의 교훈에 귀 기울이고 시대의 미혹에서 자기의 본분(하나님의 사람)을 잊지 말고 자유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삭개오를 바라보는 시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며칠 전에 여리고에 먼저 들어가셨습니다.

당시 여리고는 향료의 산지로서 물질이 풍성했기에 세무서가 있었고 삭개오는 그 세무서의 세리 장으로써 풍요로운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로 동족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착복함으로 동족들은 저들을 창기와 같이 취급하며 죄인으로 낙인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삭개오를 바라보는 시선은 죄인으로서 구원 받지 못할 자이며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매국노라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리고에 오신 예수님이 바라보는 삭개오는 길을 잃어버린 양이며 하나님 품으로 인도해야 될 아브라함의 자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9:10-13절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고백하면서 당신이 바라보는 삭개오 또한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해야 될 대상임을 고백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시선을 가지고 계셨기에 삭개오는 구원을 받고 기쁨을 찾을 수 있었으며 그의 미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미래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찾으시는 예수님의 마음 또한 이러한 시선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 삭개오의 상태.

 

세리장으로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삭개오는 본문의 모습 속에서 그가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에서 자유하기를 얼마나 소원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픔과(당시 유대인의 죄인이라는 낙인은 단순한 죄인이아니라 구원과 직결시켜서 지옥 갈 사람으로 인정했다.)고민을 알아주실 분이 누구인가 찾고 있다가 그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확신하고 마침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에 자신의 체면이나 동족의 멸시는 생각지 않고 예수님을 보기위해 뛰어나갔으며 키가 작아 볼 수 없자 뽕나무위에 올라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삭개오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삶에 대하여 고민하고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는지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를 구원하시고 그의 집에 영접을 받고 들어가면서 9절에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선포하십니다. 삭개오가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는 진정 구원받은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사명은 갈급함에 사모하는 잃어버린 삭개오를 찾아 그들에게 기쁨을 찾아주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며 위치입니다. 예수님은 그 음성을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신 목적.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명과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리고의 삭개오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즉 이러한 역사를 통해 예수님은

 

①예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인간의 기준과 편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9절 말씀에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다하시며 저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인정하신 것은 저가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그곳에 마음과 생각을 두고 우리의 시선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②예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10절 말씀에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삭개오와 같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것이 당신의 사명임을 고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아직도 수없이 많은 잃어버린 자가 있습니다. 그 잃어버린 자는 삭개오와 같이 동족에게 멸시받고 죄인 취급받으며 인정받지 못하되 다른 모든 이가 소망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이 있는 자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진 편견을 버려야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삭개오를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4. 다른 사람의 기쁨을 찾아주는 방법.

 

①편견을 버리라.(고전1:26.28-29)

구원의 대상자를 육체의 어떠한 기준이나 모습으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편견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고전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바울은 편견을 버리고 자신을 빚진 자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롬1:14에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고 고백하면서 바울은 아무쪼록 한사람이라도 더 얻고자 달려간 것을 고전9:19에 고백한 것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이처럼 우리도 편견을 버릴 때 잃어버린 삭개오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②긍휼히 여기라.

나 자신을 보고,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엡2:1,3, 5:8에 보면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으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음을 가르쳐줍니다. 이런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받은 자가 그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마18:24-28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모습을 통해 교훈하셨는데 일만 달란트 빛진 자의 가장 어리석은 모습은 자신이 받은 은혜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그는 백 데나리온 빛진 동관 하나를 때리고 옥에 가두었고 그 소식을 들은 주인은 그에게서 자신이 주었던 모든 은혜를 다시 빼앗은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가 긍휼의 눈으로 삭개오와 같은 사람을 바라보지 못한 다면 결국 우리가 받은 은혜의 가치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③하나님이 얼마나 기뻐 하실까를 생각하라.(갈1:10, 눅19;10, 겔18:23,33:11)

바울은 갈1:10절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는 고백을 통해 자신이 어떤 중심으로 복음의 일군이 되었는지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삭개오와 같은 사람을 찾아 기쁨을 되찾아주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10절에서도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는 고백을 통해 삭개오를 찾은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제자들에게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겔18:23,33:11) 이처럼 하나님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주 앞으로 돌아오는 일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이 사명을 저와 여러분 감당하여 시대의 미혹가운데서도 묵묵히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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