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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눅19:1-10

제 목: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기쁨.

 

여러분에게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만약 바른 소원이 있다면 그 소원을 향해 달려가십시오, 그 소원은 새로운 미래를 예비해 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삭개오는 감춰진 소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소원을 이루기까지 남이 헤아릴 수 없는 아픔 속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삭개오를 찾아 여리고에 오셨고 결국 그는 예수님을 만나 그의 감춰진 소원이 이루어졌으며 결과적으로 그는 자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2022년 자유의 여정가운데 우리는 들어섰습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삭개오와 같은 자유를 경험하기를 주안에서 소망합니다.

 

1. 여리고의 세무서장 삭개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며칠 전에 여리고에 들어가셨습니다. 당시 여리고는 향료의 산지로서 교역이 풍성한 성읍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세무서가 있었고 삭개오는 세무서의 서장으로써 본문1절의 말씀처럼 그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던 동족의 시선은 따갑고 곱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로 여기며 그들은 동족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너무 많은 물질을 착복함으로 동족들은 저들을 매국노요. 창기와 같이 취급하며 죄인으로 낙인찍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삭개오를 바라보는 동족의 시선은 하나님께 구원 받지 못할 저주받은 자라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의 중심은 자신도 하나님 안에서 구원의 자유를 갈망하고 그 안에서 살고 싶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리고에 오신 예수님이 바라보는 삭개오는 길을 잃어버린 양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던 아브라함의 자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비방하던 자들에게 마9:10-13절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당신이 바라보는 삭개오는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증거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이러한 시선을 가지고 계셨기에 삭개오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잃어버린 자유를 찾을 수 있었으며 그의 미래는 또 다른 자유의 여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2. 삭개오의 부르신 예수님.

 

세리장으로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삭개오는 본문의 모습 속에서 그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보여줍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픔과(당시 동족들이 자신에게 죄인이라는 낙인은 단순한 죄인이 아니라 구원받지 못할 지옥 갈 사람으로 바라보았기에 그는 그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 고민에서 해방되기를 소원했는데 그것을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이신 것을 그는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모했는데 마침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셨다는 소식을 그는 듣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체면이나 동족의 멸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을 보기위해 뛰어나갔으며 키가 작아 볼 수 없자 뽕나무에 올라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삭개오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삶에 대하여 고민하고 벗어나고자 갈급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제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예수님은 가장 먼저 알아보시고 삭개오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9절에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이 그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감격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모든 고민과 아픔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그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입니다. 이 기쁨과 은혜가 자유입니다. 그러면 이 자유는 어떻게 시작 되었을까요?

 

3.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기쁨.(자유의 여정)

 

삭개오를 예수님이 찾아 오셨을 때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을 이미 아셨습니다. 즉 그의 마음은

 

①구원의 세계에 대해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물질적으로, 인간적으로, 정욕적으로 시선을 돌리며 그 안에서 무언가 찾으려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각자자기의 욕심을 붙들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노중에서 누가 크냐고 서로 다투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과거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후에 요6장26-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6:26-2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러나 삭개오의 중심은 이러한 세계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세계에 대하여 갈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를 찾아 그에게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유의 여정에 들어서기 위해서 삭개오와 같은 구원의 세계를 사모하는 시선과 갈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성도에게 자유의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②선한 삶에 대한 소망을 품었던 것입니다.

삭개오는 8절에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이러한 삭개오의 고백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가 구원받은 감격에 기뻐서 즉흥적으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고백했을까요? 아니면 인사치레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삭개오는 자기 동족의 어려움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동족들이 생각한 것처럼 토색하지 않았음을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의 이러한 고백은 그가 품었던 선한 삶에 대한 소망을 예수님께 고백했던 것입니다. 즉 자유의 여정은 당장 구원받은 것에 멈추지 않고 선한 사업에 부하며 선한 일에 마음의 소원을 품고 앞장서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생각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의 선포를 들었을 때 그는 이제 담대히 이러한 일을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삼서에 나오는 온 교회의 식주인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처럼 삭개오도 선한 일을 하고자하는 그의 소망을 이제 실천에 옮기게 되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제 그는 은혜 안에서 넉넉한 마음으로 그 일을 하게 되었고 그의 미래는 하나님의 축복이 예비 되었을 것입니다.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찾아가는 사람은 선한 일에 힘쓰고 그로인해 미래를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③받은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소망입니다.

삭개오는 멸시받고 정죄되는 사람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기쁨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는 후에 여리고 감독으로 그의 인생2막을 살아갑니다. 그가 사역했을 때 당시 초대교회의 소용돌이가 몰아쳤으며 그는 많은 사람을 주 앞으로 인도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이미 가슴에 가지고 있었던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많은 제물을 얻는 욕을 먹고사는 삶보다 주를 위하여 복음 전도자의 삶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의 영은 더욱 자유로워졌으며 그의 미래는 또 다른 상급으로 예비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우리의 자유의 여정은 우리가 어떤 마음과 소원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결과적인 열매입니다. 그 열매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의 자유의 여정이며 그 길에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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